NIS 재학中인 송영수 학생 아버지 학교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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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밖에 안된 철없는 아들을 미국까지 보내놓고 영 맘이 편치 않던 차에 마일리지 표를 이용해서 미네소타의NACEL학교를 다녀오기로 했다. 객지에서 고생하고 있을 아들의 정서함양을 위하여 일에 분주한 집사람도 함께 동행길에 올랐다.
시카고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약 1시간 정도, 비행기가 내릴 준비를 하는데 엄청나게 큰 강물이 S자, U자를 합한 모양새로 크게 휘돌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크고 작은 저수지 모양의 호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비행기가 기울자 11월 초의 태양이 호수에 비추어 마치 수백, 수천개의 보석들의 반짝이는 빛에 눈이부셔 그만 좌석에서 떨어지는 줄 알았다.
공항에서 아들과 함께 홈스테이 아빠를 반갑게 상면을 한 후, 호텔에서 짐을 꾸려 바로 홈스테이 집으로 향했다.
맑디 맑은 하늘, 천연 무공해의 바람과 자연. 나무와 집들과 도로가 잘 어울려 배치된 도시외곽의 정겨운 모습이 오랜 비행의 피로를 어루만져 주었고, 도처에 산재한 수많은 호수들이 호반의 도시를 여유롭고 평화롭게 둘러싸고 있었다.
홈스테이 가정은 젊은 부부와 어린 딸 둘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미국 가정으로 토실한 고양이 한 마리도 식구였다. 미리 준비해 간 몇가지 선물꾸러미를 풀어서 전달하고 격이 없는 대화를 나눠보니, 아들이 머물고 있는 집이어서 그런지 금세 친근해지고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아직은 아들이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를 나눌 수준은 못미치는 상황이고, 나도 출장이야 많이 다녀봤지만 본토 영어와 응대해서 대화를 하려니 다소 움찔하기야 하지만, 콩글리쉬라도 꿀리지 않고 구사해보니 의사전달하는데 별 문제없이 유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학교를 방문했다. 한국에서 우리 부부가 왔다고 고맙게도 학교측에서는 부학장님이 손수 학교시설을 안내 해주셨는데, 100년이 훨씬 넘는 전통의 Hamline University 캠퍼스내에 NACEL학교가 자리 잡고있고 우리 학생들은 메인빌딩과 캠퍼스내의 인근 건물에서 나누어서 수업을 받는 다고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를 거닐다 보니 나도 다시 이런곳에서 좀 공부를 하고 싶은 욕망도 생기고, 전형적인 우리 늦가을 오후의 햇살과 떨어지고 있는 낙엽들로 캠퍼스의 분위기는 그만이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우리 부부는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캠퍼스를 감상도 하는 계기도 되었다. 교장선생님을 뵙고 말씀을 나누어보니 국제학교 경험으로 근 30년 관록을 지닌 분으로서 대만에서 거의 십년, 터키에서도 오랫동안 국제학교 운영을 하시었고, 중국에도 NACEL 학교를 운영한다고 하셨고 최근에는 한국의 교육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국내 몇개 대학과도 별도로 업무교류중이라고 하셨다.
이분의 학교운영 철학은 어린학생들이 장차 글로벌 무대에서 독립적으로 본인들의 꿈을 능력껏 펼칠 수 있도록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진 환경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자율적인 학창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교사진과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 이라고 하시는데, 내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국내의 입시문제, 교육환경이 자꾸만 떠올라 오버랩되었다.
본인은 본래 뉴욕출신인데 지금은 여기처럼 환경좋고 사람좋은 곳에 더 마음이 간다고 하시면서 미네소타주가 미국내에서 가장 교육환경이 좋은 도시로 꼽혔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어서, 각 과목 선생님들을 일대일로 만나 뵈었다. 폴란드가 고향인 체육선생님은 올해는 수영에 많이 치중을 했다면서 내년에는 스킨스쿠버를 가르칠 예정이라는데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정말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들러본 체육관에 수영장에 보니 이곳은 대학시설을 모두 공유할 수 있어서 좋다던 부학장 선생 말씀이 생각났다.
ESL 선생님, 하얗게 초로의 여자분인데 어찌나 미소가 다감하고 환한지 영어회화가 술술 절로(?)됐다. 얘기도중에 쉬는 시간인지 어느새 우리 애들 (한국 학생)이 선생님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녀석들 뒤에서 실실 웃으면서 맴도는 것이 오랜만에 고국의 어른을 만나서 반가워서 그런 것 같았다.
이어서 음악실을 가보니 자그마한 강당교실에서 피아노를 둘러싸고 대여섯 명이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만 눈여겨 보니 우리 아들도 거기서 뭐라고 하는지 함께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으이구, 저 녀석이 좀 뭘 알고 지금 수업을 따라하는 것인지 이 애비의 마음은 순간 다소 복잡해졌다.
서로들 손뼉 치고, 선생님은 피아노 치고, 틀린 부분 고쳐서 다시 노래하고... 격식이 없으면서도 내가 보기엔 너무 자유 분망한 모습이었다. 계속해서 일어를 가르치는 자그마한 일어 선생님도 만나 뵈었으며, 미술실 앞에서 애들이 그린 그림 구경하다가 미술 선생님 만나서 본인의 교육철학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동안 한참을 경청해야 했다. 역시 국제학교 답게 여러나라 학생들이 그려놓은 걸 보니 그 나라 특유의 색감이나 문양들이 특징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미리 학교에 당부드린 대로 우리 아이들을 만났다. 모두 9명.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고루 분포가 되어 있고 그 중 여학생이 두 명이었다. 학교에서 준비해 준 햄버거와 음료수를 들고 별도로 마련해 준 장소에서 우리 학생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딴에는 한국에서 온 학부모인지라 인석들 만나면 요것 저것에 대해서 훈육을 좀 하리라 했는데 웬걸.........
이 녀석들 즈그들이 떠들고 장난치고 정신이 없었다. 한 삼분쯤 보고 있으려니 잘 통제가 안될 것 같아 목소리를 가다듬고 분위기를 다잡았다. 너희들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 생각하면 어쩌고 저쩌고 ....
한국의 너희 또래들 입시준비하는라 어쩌고... 저쩌고... 아이고 이 녀석들. 몇 마디씩 각자 중언부언 하는데 나름대로 생각과 주관은 또렷이 있지 싶었고, 대학을 목전에 둔 친구들은 나름대로 세부적인 본인계획들에 대해 언급을 했다.
또한 얼마나 잘들 먹는지 큰 햄버거 하나가 5분도 안돼서 뚝딱 사라졌다. 학교에 대해서얘기 좀 해보랐더니, 지하 1층 교실은 햇볕이 안 들어서 안좋아요, 체육시간이 너무 후딱 지나가고 제대로 운동을 못해요, 학교 자치회를 해보면 재정지원이 더 필요한 거 같해요, 미국학생들 숫자가 더 많았으면 해요 등등등.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 나라가 언론의 자유이고, 민주화의 극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을 살펴보니 미국에 온지 약 3년쯤 된 친구들은 매우 유창한 영어를 하는 것 같아 보였고, 2년쯤 된 친구들은 대화하는 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발음도 토종미국에 근접한 것 같았다.
학생들과 주어진 점심시간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갔고, 애들은 각자 다음 수업을 받으로 뿔뿔이 캠퍼스로 흩어져 갔다. 꽤나 추운 날인데도 양말도 안 신은 녀석에서 털모자를 눌러 쓴 녀석까지, 우리 학생들도 다양하게 각자 스타일대로 사는 듯이 보였다.
최근에 완공한 학생회관 같은 건물과 그 뒤에 있는 축구장 (미식)을 구경해보니 2002 오!필승 코리아가 생각났다. 시간이 되면 이 곳 학생들과 나도 저기 운동장에서 한 판 뛰어봤으면 좋겠다. 얼마나 이쁘게 운동장을 꾸며 놓았는지. 신관 건물에 들어와 카페에서 코코아를 한 잔 마시며 푹쉬고 있는데 벽에 걸린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Hamline 대학교 1900년 후반 이 대학 축구팀 흑백사진이었다. 내용을 읽어 보니 당해년도에 시합이 딱 한번 있었는데 그만 졌단다. 게임 끝난 직후 일동 찰칵한 것이라는데... 학생들 표정을 보니 영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스코어를 보니 몇십 대 0 패. 아이고. 어쩐지 제군일동들의 표정이.
199패 1승 1무를 기록한 서울대학교 야구부와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학창시절의 순수한 꾸밈없는 표정이 녹아 있었다. 100년도 훨씬 더 이전의 미국학생들 모습이 말이다.
우리 아들을 비롯한 각국의 학생들이 여기에서 공부를 하고, 축구를 하고, 노래를 한다. 그러다가, 독일학생들이 독일자동차에 대해서 자랑을 늘어놓으면 한국학생들은 그에 맞서 한국자랑을 하고, 축구시합같은 걸 할때면 꼭 오!필승코리아를 한 판 부르고 시합을 한단다.
모두들 건강하고 건전하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젊은이 되기를 기원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미시시피강의 굵고 푸른 물결을 닮아 청청하고 싱그럽게 힘찬 젊은이들이 되어 세계만방에서 제 역할들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