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후기

민건규 (Notre Dame Regional High School 2007년 졸업, Emory University 입학)

작성자 KEF
작성일 18-01-16 14:14 | 조회 14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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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부터 정말 동경했던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외국에 나가서 나와 다르게 생긴 외국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시작한 유학생활은 나에게 정말 특별했고 소중했다. 

많은 유학생들이 대도시에 살면서 기숙사립학교를 다니지만 크리스찬 사립유학을 통해 유학을 간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내가 유학을 한 Cape Girardeau는 인구 8만 정도의 소도시로 한국인은 찾기가 거의 힘든 곳이었다. 내가 처음 교환학생으로 간 Notre Dame Regional High School은 사립학교여서 나는 교환학생 1년을 마치고 그곳에서 계속 유학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Notre Dame High School에 남아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내가 처음 교환학생을 갔을 때부터 12학년이 될 때까지 그 학교에서 한국인은 나 혼자였기 때문에 미국인들과만 생활하게 되었고, 덕분에 영어도 빨리 익힐 수 있었고 미국 문화에도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처음 교환학생 시절에는 영어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잘한다고 자부해오던 나였지만 미국에서 영어로 된 교과서로 문학, 수학, 과학, 역사 등을 배우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는 집에 와서 하루 종일 교과서를 읽고 숙제를 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버리기 일쑤였고 주말에도 학교 공부를 따라잡느라 바빴다. 하지만 Notre Dame에서의 두 번째 해에는 영어가 많이 좋아져서 학교 공부가 많이 수월해졌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미국 친구들을 사귀고 적응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인인 나와는 사고방식도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달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미국아이들이 별 의미 없이 하는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곤 했다. 하지만 “When in Rome, do as Romans do(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 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지내면서 모든 것을 미국 아이들의 기준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또 그들의 사고방식에 따라 생각을 하려고 하니 미국아이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다. 덕분에 11학년 말에는 전교 학생회장 선거에도 출마해 학생회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다양한Activity에 참가했던 것도 여러 친구들을 두루 사귀는 데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한 여러 가지 Activity들 중 내가 절대 잊지 못 할 것은 Cross Country와 Track이였다. 내가 좋아하는 장거리 달리기를 한다는 것 자체도 정말 나에게는 즐거움이었고, 더하여 그 운동들을 하면서 정말 친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팀과 함께 힘들고 고된 연습, 경기 등을 해 나가면서 서로간의 유대감이 깊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코치들과도 정말 정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멀리 원정 경기도 나가고 또 다른 팀들과 경기도 자주하다 보니 다른 학교의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다. 

여름 방학 때 참가한 American Legion Missouri Boys State라는 프로그램도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Boys State는 전미의 각주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인데 학생들에게 미국 정부와 정치에 대해 가르쳐 주고, Boys State라는 가상의 주에서 주민이 되어 정치에 참여하며 간접적으로 미국의 정치와 정부를 체험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전 미 대통령이었던 Bill Clinton등도 고등학교 시절에 참가했을 정도로 미국 내에서 인지도가 제법 높은 프로그램인데,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미주리 각지에 있는 여러 고등학생들을 만나서 친구로 사귈 수 있었고 지금도 그 때 만난 친구들과 가끔 인터넷으로 연락을 하며 지낸다. 

학교에서 여름 방학 때 간 Mission Trip 역시 내가 미국생활을 하면서 체험한 가장 즐거운 경험 중 하나였다. Mission Trip은 선생님들의 관리하에 몇몇의 학생이 함께 St. Louis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고 관광도 한 일주일간의 여행이었다. 나는 그 Mission Trip을 통해 평소에 잘 모르고 지내던 친구들과도 마음을 열고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친구들로 만들었고 또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돈독히 할 수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봉사활동을 하면서 미국 내의 가난하고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첫 유학 1년은 정말 적응하느라 바빴고 영어도 부족했기 때문에 공부에는 좀 소홀한 면이 있었다. 내 첫 유학 1년의 학점은 3.5정도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낮았다. 하지만 11학년이 되면서 조금씩 대학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미국의 명문대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다. 11학년 때는 내가 학교에서 들을 수 있는 제일 수준 높은 과목들을 많이 들었고 또 학교 방과 후 활동도 훨씬 많이 참가했다. 덕분에 11학년 때의 학점은 4.1정도가 나왔고 12학년 때까지 그 학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SAT였다. 미국학교는 한국학교보다 공부할 양은 적지만 방과 후 활동 등을 많이 하다 보니 SAT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아침6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학교에 7시쯤 도착하여 수업을3시에 마친 후 나는 주로 6시까지 방과 후 활동을 하다가 집에 오곤 했다. 집에 와서도 학교숙제, 시험공부 등을 하다 보면 이미 시간은 흘러 12시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덕분에 11학년 2학기에 친 나의 첫 SAT점수는 기대 이하였고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 때 당시 받은 점수로는 내가 꿈꾸던 명문대학교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충격도 잠시, 시간이 날 때마다 난 SAT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단어공부를 하는 날도 있었고 주말에는 오전, 오후 내내 근처 대학 도서관에 가서 SAT만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11학년 후 여름방학 때에도 도서관을 다니며 하루에 5시간 가까이 SAT만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덕분에 12학년 때 친 SAT에서 점수를 250점 가까이 올려 내가 꿈꾸던 대학에 갈 희망이 있는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12학년 1학기 때에는 SAT준비 이외에도 대학원서 준비, 학교공부, 방과 후 활동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 긴 고생 끝에 대학을 합격했을 때의 기쁨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찾아온 졸업식. 솔직히 지난 3년간 정말 사람들도 많이 사귀었고 또 여러 가지 경험을 한 즐거운 곳이었는데, 이렇게 떠난다는 것이 무척 아쉽고 서운했다. 졸업식에서는 학생회장이라 학생대표로서 졸업식 사회를 보았고, 또 부모님도 아들의 졸업식을 지켜보러 멀리 미국까지 오셨다. 그리고 와 계신 동안 내가 지난 3년 동안 정든 선생님들과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내 지난 3년간의 유학생활을 돌이켜 보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내 유학생활에 만족하는 것은 단지 좋은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이 아니다. 지난 3년간의 유학생활 동안 다른 사람들은 평생 체험할 수 없는 경험을 많이 했고, 평생 친구로 남을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또 내 유학생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크리스찬 사립유학 3년간의 경험은 앞으로 내게 열릴 큰 미래를 시작하는 초석이었다. 이제 시작된4년간의 대학생활도 내가 보낸 크리스찬 사립유학의 3년처럼 열심히, 또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즐겁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3년간의 유학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준 Nacel Open Door 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민건규 (Notre Dame Regional High School 2007년 졸업, Emory University 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