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행(Gehlen Catholic School in IA 2013년 졸업, University of Californi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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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 유학생활 4년 동안 웃지 못할 일, 즐거웠던 일, 가슴 벅찼던 일, 억울하고 서러웠던 일 등 많은 경험을 했다. 내가 했던 경험들을 하나하나 다 이야기를 하자면 아마 여느 대학들에서 요구하는 100장짜리 졸업 논문에 가까운 방대한 양의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거두절미하고 내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변화한 내 모습을 위주로 이야기하겠다. 사실 이 경험담을 쓰면서 이전의 Nacel Open Door 선배들이 썼던 경험담들을 읽어봤다. 솔직히 말해 예전 나의 부모님이 세미나에서 받아온 책자들까지 뒤져가면서 경험담들을 읽었다. 그 글들을 읽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열심히 유학 생활해서 나보다 더 잘된 케이스, 흔히 부모님들 사이에서는 랭킹이 높은 명문 대학교에 입학할 예정인 사람들,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했고, 재미있는 경험담들을 읽으며 “나도 저렇게 유학생활을 좀더 재미있고 알차게 보낼걸” 이라는 후회도 했고, 또 그들이 느낀 점에 공감을 하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나는 유학이 나에게 궁극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유학은 나에게 다른 의미의 행복을 가르쳐 주었다. 미국유학 첫해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미국의 거대한 땅덩어리도 아니었고, 미국인들의 큰 키와 덩치도 아니었고, 미국 피자와 햄버거의 거대한 사이즈도 아니었다.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미국인들의 생활모습 그 자체였다. 미국 학생들이 스트레스 없이 사는 모습, 미국 사람들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시원시원한 성격, 또 금요일 밤이면 대가족이 자녀들의 운동 경기에 참석하는 문화 등 한국인들과는 정반대로 미국인들은 참 편하고 재미있게 사는 것 같았다. 반대로 한국을 생각해보자. 학생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내내 성적관리, 봉사활동, 수능준비 등 학업 스트레스에 지쳐있고 부모님들은 많은 업무와 매일매일 계속되는 회식자리에 지쳐 쓰러지실 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가족의 시간을 갖기 힘든 게 현실이다. 물론 이런 삶에 익숙해진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처럼 일보다 가족이 우선되는 사회 속에서 가족간의 유대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은 나를 글로벌화 시켰다. 미국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다. 인종에 상관없이 모두 어울려 살아가는 미국은 어찌 보면 지구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고 접해 볼 수 있다. 나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미국인 외에 많은 교환학생들과 만날 기회를 얻었다. 그들은 브라질, 베네수엘라, 멕시코, 노르웨이, 독일, 스페인, 중국, 온두라스 등 세계 각지에서 우리학교로 공부를 하러 오고 우리는 그들과 어울려 공부를 하며 그들의 문화를 배운다. 처음에 그들을 보았을 땐 괜한 이질감이 들어 별로 가까이하지 않았다. 서로 영어가 부족해 말도 잘 통하지 않았고 어차피 그들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미국 친구들을 사귀기에 바빠 그들이 나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들은 점차로 바뀌었다.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그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같이 어울려 놀며 그들을 좀더 깊이 알아가면서 그들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험들을 하기 힘들다. 설령 학교에 외국인 친구들이 있다고 해도 우리와 같이 많은 나라의 아이들과 같이 한 공동체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점점 더 글로벌화 되는 시대에 어찌 보면 이것이 유학이 가지는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유학은 나를 리더의 길로 입문시켰다. 미국은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리더십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리더는 여러 가지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미국에서 강조하는 리더십은 ‘어떤 일의 선구자’의 뜻으로 통용된다. 단지 머리가 좋고, 사람들이 잘 따르고, 일을 잘한다 해서 리더로 추앙 받는 시대는 지났고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리더십을 클럽활동을 통해 가르친다. 미국에서는 클럽활동이 학교 생활에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며 몇몇 클럽들은 학교의 행사 등 많은 중요한 일들의 결정권을 갖는다. 클럽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학생들을 항상 머리를 모아 새로운 일을 모색하고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매주 모임을 갖는다. 나 역시 이러한 클럽활동에 큰 매력을 느껴 여러 가지 클럽활동을 했었다. 풋볼, 트랙 등 운동으로 시작해서 퀴즈클럽, 크리스천 리더십 팀, NHS, 학생회 등 많은 클럽들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활동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확실히 해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 미국에 가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영어를 어느 정도 해놓으라는 것이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만나본 많은 유학생들이 미국에 처음 와서 할 줄 안다는 영어는 고작 ‘하이, 땡큐, 쏘리, 하우 알 유, 아임 파인 떙큐, 아이 엠 헝그리’ 등등의 가장 기본적이고 한국 교과서적인 말들뿐이다. 더 문제인 것은 그런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미국가면 다 배우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생각해보라, 길가다가 만난 외국인이 당신을 붙잡아놓고 서툰 한국말로 계속 말을 건다면 얼마나 짜증나고 무시하고 싶어지겠는가. 미국인들이 착해서 이국에서 온 동양인 학생의 서툰 영어를 몇 시간이고 들어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더욱이 미국에는 지금쯤 없어질 때도 된 인종차별이 미세하게 남아있다. 아시아인들이 눈이 옆으로 찢어지고 서양인들에 비해 체구가 왜소하고, 머리가 크고, 얼굴이 납작하고 등등 수많은 이유로 동양인들을 비하하는 발언들을 듣고 보았던 적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까지 잘 못하는 답답이가 되어버린다면 학생들의 놀림거리가 될 가능성이 허다하다. 특히 동양인들이 이런 경우를 많이 겪는다. 놀림거리가 아니더라도, 많은 동양인 학생들이 또래 아이들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신임을 얻지 못해 들어가고 싶은 클럽활동들도 하지 못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그저 학교만 나오는 그림자가 되어버린 경우도 많이 보았다. 노력하는 자에게 인생은 미소를 짓는다 하지 않는가. 유학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영어공부에 조금 더 투자하라. 무슨 일을 하던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임한다면 어느 샌가 아이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리더로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유학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 크게 감사한다. 고등학교 4년 동안 부모님의 곁에서 보호를 받기보다는 부모님의 곁을 떠나 유학하면서 나 자신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었고 그 발전을 통해 미래에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