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후기

박미나 (Ashville Christian Academy 2011 졸업,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

작성자 KEF
작성일 18-01-16 14:19 | 조회 156,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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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유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왜 모험을 하려 하냐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전국모의고사 성적으로 보면 꾸준히 노력한다면 한국에서도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내가 유학을 결정한 이유는 도전정신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나는 미국으로 향했다. 

Asheville, North Carolina, 앞으로 3년 동안 살 곳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성장한 나에게는 매우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앞을 봐도 산, 뒤를 봐도 산, 옆을 봐도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였다. 
학교 시작 첫날, 나의 두근거리는 유학생활이 시작되었다. 10학년으로 시작해 나는 우선 들을 수 있는 Honors 과목은 다 들었다. AP 과목은 미국학교를 다닌 경험이 없어서 학교 선생님들이 다음 학년에 듣도록 만류를 하셨고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기 보다 추천하는 과목을 듣고 AP 를 듣는 것 대신 과외활동이나 친구를 사귀는 데에 시간과 정성을 쏟기로 했다. 10학년 때는 전과목 A 를 받았다. 
10학년이 끝날 즈음에 11학년에 들을 과목을 정하기 위해 카운셀러를 만났는데 그 때는 10학년 때 성적을 잘 받아서인지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다 듣게 되었다. AP Calculus, AP Biology 그리고 AP US History까지. 그 외에는 모두 Honors 과목으로 듣고 French도 여름방학 때 미리 공부를 한다는 조건 하에 French I에서 French III로 듣게 되었다. 카운셀러는 계속해서 나한테 힘들 것이라고 했고 이 어려운 과목을 선택하고는 말로만 듣던 그 힘들다는 11학년이 시작되었다. 

11학년은 역시 10학년 때 와는 달리 어려웠다. 역시 AP Biology 와 AP US History는 5월에 보는 공식시험에서는 4점을 받았는데 학교 GPA 는 B 로 마감되었다. 학교 수업에서 A 를 받은 아이들이 나보다 더 낮은 점수를 받는 경우도 있었고 이런 점에 대해 불평하고 있을 때 홈스테이 아저씨가 충고를 해주셨다. 학교에서는 공부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지 않는 선생님과도 수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거라고. 그런 면에서는 내가 현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AP클래스에서 B를 받아도 나쁘진 않지만 그때 A를 받으려고 수업에 더 성실히 임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매우 후회된다. 선천적으로 수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AP Calculus는 정말 어려움 없이 5점을 받았다. 11학년 초에는 쉬엄쉬엄 공부하고 Cross Country 라는 운동과 다른 활동을 하며 시간을 많이 보내고 11학년 말에는 AP 준비를 하느라 SAT는 정말 손도 못 댄 상태였다.

여름방학을 보내고 온 12학년 초는 정말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학교에서 내준 졸업페이퍼와, 2개의 AP 클래스, 아직 한번도 보지 않은 SAT는 물론 SAT II도 봤어야 했다. 12학년 2학기는 자유로우면서도 생각을 많이 해야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기간에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보길 바랬다. 우선은 학교 마스코트에 도전하였다. 학교가 처음으로 마스코트 인형을 구입했는데 농구 경기에서 응원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고 친구와 함께 안무를 짜고 배경음악을 고르고 오디션을 보았다. 무척 떨렸지만 열심히 했고, 학교 마스코트 중 하나로 채택되었다. 며칠 후 농구 경기가 열리고 막상 하다 보니 창피한 것 보다는 땀이 너무 많이 나서 고생했다. 사실 얼굴도 안 보이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다. 심한 몸치지만 나름 춤도 추고 어린 아이들과 놀아주고 응원을 리드도 하였다. 

이 외에도 나는 10학년 말에 학급 선거에 나가 낙방한 경험이 있다. 그 당시에는 무척 속이 상했지만, 도전을 해보지 않았던 것 보단 나았던 것 같다. 그 경험을 통해 내가 더 발전해야 된다는 사실도 깨닫고 그리고 1년 후 더 노력해 11학년 말에 학년 선거에 나가 당선 되었기 때문이다. 10학년에 입학을 해서 그 해 학년 말에 선거에 나갔던 것이 이른감도 있고 주변에서도 1년을 더 기다려보라는 얘기도 했다. 당선될 확률이 좀 희박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경험이 있어야 11학년에 더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ecretary/Treasure of Senior class로서 배운 점을 쓰려면 몇 페이지는 될 것이다. 한국에서도 그런 경험이 많은데 한국 초중고의 리더와 미국의 리더는 정말 달랐다. 정말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자리다. 더 많은 책임과, 그에 따르는 평가. 리더로서 공부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성실만 해서도 안되고,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닌 클래스를 위해 창의력을 가지고 아래에서 봉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국에서 말하는 리더였다. 사실 12학년 때 신경을 많이 쓴 이벤트도 있지만 너무 바빠 좀 소홀히 했던 것들도 있었다. 경험한다는 것은 하지 않은 것 보단 났다. 

그 외에 Christmas Banquet때 Senior girls’ chorus 지휘한 일 또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호스트 시스터가 제안해서 시작된 이 일을 통해 같은 학급 학생으로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총 책임을 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우선 아이들의 뜻을 합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그리고는 같은 또래로서 지도할 때는 질책보다는 칭찬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파티 당일 까지도 매우 걱정이 되었지만 결과는 생각 보다 좋았다. 소리도 크고 화음도 잘 맞았다. Senior 로서 단합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도 좋았고, 후배들이 나중에 자기네들도 이렇게 해보고 싶다고 할 때 뿌듯함을 느꼈다. 선생님들도 매우 좋아하시고 졸업식 때도 하면 어떻겠냐며 제안하셨다. 실제로 우린 졸업식 때도 Senior girls끼리 모여 합창을 했다. 힘든 일을 성취하면 기쁨이 온다는 진리다. 

이것들 외에도 나는 많은 활동을 했다. 하루에 10킬로씩 뛰는 Cross country로 시작해서 Soccer, Basketball Manager, Youth Orchestra, Student Government, 친구와 하루 계획해 Talent show에 나가 1등 해 상금도 받은 기억, 또한 학교 밴드 시합의 심사위원으로 채택 되 심사한 기억 등. 그리고 심지어 12학년 말 발목이 부러져 졸업 여행을 휠체어를 타고 하는 경험까지! 이런 경험들이 소중한 이유는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해준다는 의미에 있는 것 같다. 

끝은 항상 또 다른 시작인 것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대학에 입학을 한다고 공부의 끝이 아닌 거다. 내가 지금 왜 공부를 하는지, 어느 분야에 내가 관심이 있고 시간을 쏟아도 아깝지 않고 “즐거운지”를 알아가려고 해야 할 것이다. 공부는 즐겁게 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공부가 의무화되어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고대나 중세까지만 해도 공부는 귀족의 여가활동 중 하나였다는 사실, 그들은 “Joy of Learning”을 알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나 자신조차도 내가 무엇을 공부할 때 즐거움을 얻는지 확실히 안 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분야가 흥미로운 지, 이제 점차 대학에서 전공과목 뿐 아니라 교양과목도 심도 있게 배우며 찾아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대학이 무척이나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