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후기

이슬 (Hill-Murray School 2009년 졸업, U of Minnesota -Twin Cities 입학)

작성자 KEF
작성일 18-01-16 14:16 | 조회 149,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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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결코 헛되지 않은 선택 이었기에 나는 행복합니다." 

처음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온 것은 2006년 8월이었습니다.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철이 없었던 나는 미국이 마치 내 세상인 것 같았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던 시야가 너무 좁았던 걸까요,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인것을 몰랐습니다. 도착하자 마자 느낀것은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차이였습니다. 말로 표현안해도 나를 다 알아주셨던 부모님은 안계셨고, 모든 일을 내가 결정하고 행동에 옮겨야 하는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알게되었습니다.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는데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절망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그때 저를 도와주셨던 분들이 Lonna와 Tim 가족이었습니다. 이분들은 10명이라는 대가족이었는데, 영어가 많이 서툴렀던 저를 아줌마와 아저씨께선 자식처럼 아껴주셨고 네 명의 호스트 자매였던 우옌, 킴, 프란지, 그리고 안야는 저와 함께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아줌마와 아저씨, 그리고 호스트 자매들이 주었던 사랑과 행복했던 기억은 앞으로도 계속 제 마음속에 있을 것입니다. 

1년 후 11학년 때 Hill-Murray 고등학교로 가게 되었는데 이 학교는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입니다. 특히 영어수업을 가장 즐겨했는데, 11학년 선생님이셨던 Mrs. Markert은 저를 특별히 아껴주시고 책을 읽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항상 시간을 내주시며 도와 주셨습니다. 12학년 때는 영어 선생님이셨던 Mr. Phillips선생님께 배우면서 니체와 프로이드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철학도 배우고, 대학과정의 에세이도 쓰며 인생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12학년 과목 중 경제사와 정치는 저에게 있어서 성적에 욕심이 가장 많았던 과목이였습니다. 평소에도 정치에 관심이 조금 있었기에 Mr. Cleaveland 선생님을 통하여 미국 정치 구조와 이론을 배웠고 어려워했던 경제사를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를 버스로 항상 통학했기때문에 운동은 하지 못하였지만, 대신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각종 콘서트나 미사때 연주하곤 했습니다. 졸업식때도 성가대와 피아노 그리고 첼로와 함께 졸업연주회를 했었는데, 정말 마지막까지 좋은 추억을 만들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했던 방과후 활동중 바이올린 연주도 즐겼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것은 봉사활동이었습니다. 11학년 때 종교사 선생님이셨던 Mr. Cooper를 만나게 되면서 노숙자 문제에 대하여 관심갖기 시작했는데, 선생님과 다른 친구들 7명이 한달에 한번씩 했던 ‘Secure Waiting’은 정말로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Secure Waiting은 노숙자들를 위한 쉼터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저희는 그들을 위하여 시설을 방문한다음 저녁을 준비해 주고 그들과 대화를 하는데, 2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노숙자 문제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알게 되었고 그 중 David와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남을 이해할 줄 아는 배려심도 배웠고, 노숙자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의 상처를 감싸줄 수 있는 포용력도 생겼습니다. 12학년때 봉사활동을 많이 하면서 저는 로비데이날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의사당에 가서 상원 의원님들과 많은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같이 해야 해서 쉽지는 않았지만, 선생님들의 많은 도움으로 성적유지를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12학년은 미국대학 입학을 준비했던 때인데, 11학년에서 12학년 넘어가기 전 여름부터 혼자서 준비했던 터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ACT를 보기로 결심한 후 문제집을 풀며 혼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1년간 원서작성과 대학진로 그리고 ACT 준비를 위해서 가장 많이 도와주신 분은 호스트 아줌마이신 Jan 이십니다. 크리스찬 사립으로 프로그램을 옮기면서 호스트가족도 옮기게 되었는데, 아줌마는 11학년과 12학년 2년동안 저를 마치 친딸처럼 아껴주셨던 분이십니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이 저희도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아줌마께선 그때마다 저를 이해해 주실려고 노력하셨고 항상 대화로 해결하려 하셨습니다. 부모님도 옆에 안계시고 해야 할 일도 많았던 저를 배려해 주시며 끝까지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금요일 밤 한번씩 아줌마와의 외식과 영화관람이나, 크리스마스때 만들었던 진저브래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하기, 밤 12시에 장보러 가기 등, 이와 같은 사소한 것들이 모두 모여 저와 아줌마만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제 Jan은 저의 두번째 엄마이십니다. 졸업할 때도 와주셨는데, 졸업식장에 누군가 나의 응원군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고마웠습니다. 졸업파티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기 전 열어주셨는데, 그날의 행복함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일들이 3년 동안 일어났고, 그중 2년 제가 Hill-Murray 고등학교에 있으면서 겪었던 일들은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한 경험들입니다. 말로는 다 설명드릴 수 없는 일들이고, 이런 기회를 주신 나셀 관계자 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미국에 처음 갈 때의 이슬이 아닌 변화된 지금의 내가 되었고, 이렇게 까지 되는데는 저를 끝까지 믿어주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저를 응원하실 부모님과, 나셀 모든분, 많은 선생님, 제 소중한 친구들 특히 루시언니와 다운이언니, 케이트, 엘리, 샘, 그리고 리키, 마지막으로 제 2번째의 엄마 Jan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웃었던 날과 또한 눈물을 흘렸던 날도 많았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기에 나는 행복합니다.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그 일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셀을 통하여 유학을 가시는 모든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