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후기

김종은(교환학생 13기)- 값진 경험

작성자 KEF
작성일 18-01-16 14:39 | 조회 98,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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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년 1월 23일. 긴 비행 끝에 미국 North Carolina 에 도착했다. 공항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는데 금발에 파마를 하신 한 미국인 아주머니가 손을 흔드시는 게 보였다. 그게 host mom 과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차로 거의 한 시간 이상을 가니 그제서야 host 의 집에 도착했다. 애완동물이 없는 나로서는 가자마자 보이는 개들과 고양이들이 너무나 신기하고 좋았다. 내가 있던 곳은 거의 시골이어서 공기도 좋고 특히나 하늘이 너무나 예뻤다. 

나의 host family 는 host mom, dad, brother, sister 이렇게 넷이었다. 엄마가 옆에 없어서 그런지 host mom 은 그 곳에 있는 일년 동안 정말이지 나의 엄마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의 엄마이다. Host dad 는 목사님이셨는데, 조용하신 성격이셨지만 역시 좋은 분이셨다. 난 처음에는 약간 내성적인 성격이라 host brother 와 sister 는 친해지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나중에는 정말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미국에 온 지 조금 지나고 시차에 거의 완벽히 적응이 되었을 즈음에 학교에 들어갔다. 

Morganton Christian Academy . 아주 작은 학교였고 전교생도 100명이 안 될 것 같았다. TV 에서 접하던 미국 아이들의 이미지와는 전혀달랐다. 그 학교에서 교환학생은 내가 처음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처음에 애들은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내가 쑥쓰러움이 많아 처음 일주일은 조용하게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격시간 전에 나와 같은 사물함을 쓰던 Kara 가 나에게 작은 편지를 주었다. 그 편지에는 우리나라의 국기가 그려져 있었고 또박또박 Kara 가 인터넷에서 찾아 쓴 한국말들이 적혀있었다.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나의 영어이름이 Jenny였는데 Jenny는 사전에 이동식 기중기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Kara 가 나의 이름을 이동식 기중기로 적어놓은 것이다. 아직도 그 감정을 잊을 수 없다. 일주일정도 심심하게 지내온 학교가 어느새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다음날, Kara 가 사물함을 장식할 예쁜 종이를 가져왔다. 거기엔 한국말로 ‘ 이동식 기중기와 캐라의 라커’라고 적혀있었다. 캐라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고 즐거운 학교생활이 시작됐다. 선생님들은 정말 친근했다. 우리 학교의 분위기는 거의 ‘대가족’과도 같았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 옆에 교회를 가지고 계신 목사님이셨고 정말 인자하셨다. 그 분 덕에 나는 North Carolina 에서 좋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고 많은 좋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선생님들도 정말 잘 대해 주셨고 타지 생활의 어려움과 언어의 어려움을 많이 이해해주셨다. 수업은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갈수록 적응이 되어갔고 그렇게 여름방학을 맞았다. 

여름방학 때는 정말 방학답게 쉬어본 것 같다. 우리나라였다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방학 때에는 host mom 과 host dad 의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기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정말 너무 좋으셨고 친 손녀처럼 예뻐해주셔서 늘 감사했다.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여름방학 때 늘은 영어실력으로 학교에서 친구들도 더 많이 사귀었다. 

미국은 차를 타고 이동하지 않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다. Host mom 은 내가 더 많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가길 바란다고 하시면 늘 나를 데려다 주시고 데리러 오시고 그러셨다. 
그리고 가을이 되었고, 내 생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학교 칠판에는 친구들이 한마디씩 써놓았다. 칠판 구석구석 모두의 정성이 담긴 소중한 선물이었다. 친한 친구들한테는 선물도 받고 카드도 받고 그리고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에 host mom 이 학교로 찾아오셨다. 왠일이냐고 물으니 그냥 지나는 길에 들렀다고 하셨다. 나는 별 생각없이 생일 선물들을 하나하나 보여드리고 자랑했다. 그리고 조금 후에 host mom 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Kara 를 몰래 불렀다. 그리고 문쪽에서 생일 축하노래가 들려왔다. Host mom 이 16개의 초가 꽂아져 있는 큰 케이크를 들고 이쪽으로 오고 계셨다. 선생님, 친구들이 모두 생일축하 노래를 같이 불러주었다. 가슴이 뭉클하고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16개의 초를 불고 모두와 함께 케이크를 나누어 먹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Kara와 mall 에 가서 사진도 찍고 쇼핑도 하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우리 집 문 앞에 예쁜 풍선들이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안에도 풍선과 예쁜 끈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내 방 앞까지 예쁜 장식들이 이어져 있었다. 행복에 젖어있던 나에게 host family 의 선물 개봉시간이 왔다. 하나하나 선물들을 열어보고 연신 ‘Thank you’ 를 연발했다. 11월, 정말 가슴차도록 행복했던 나의 생일이 지나고 12월이 왔다. 나는 유난히 host mom 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host mom 이 저녁 늦게 도착했을 때 서로 이야기를 했었다. 돌아가야 하는 날이 다가오기 때문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둘 다 울어버렸다. 언어를 배우는 목적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외국에 와서 알게 된 이 인연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져 “ 나는 꼭 언어를 배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라고 혼자서 다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을 떠나는 날, 나를 포함해 다섯 식구 모두 아침 5시에 기상. 5시 반 정각에 집에서 떠난 우리는 계획했던 시간에 Charlotte Airport 에 도착하였다. 모든 수속을 밟고 이제는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다. 

Security test 를 위해 줄에 서있었는데 저 멀리 host mom 의 얼굴이 보였다. Host mom 은 울고 계셨다. 붉어진 얼굴을 host dad 가 대고 계셨다. 나도 자꾸 눈물이 나려는 걸 참아내고 host family 를 향해 돌아볼 때에는 웃는 얼굴을 자꾸만 만들어보였다. Host mom 도 내가 볼 때에는 웃으려고 하시다가 내가 고개를 돌리면 다시 우시는 게 다 보였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지만 ‘꼭 다시 만날수 있을거야’ 하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울지 마세요’ 라고 말해드리고 싶었지만 그 말을 채 못하고 나도 울어버릴까 말을 삼키고 말았다. 

오랜 비행끝에 다시 한국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host family 에게 전화를 했다.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보고싶다’라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 빨랐고 어쩌면 너무 느렸던 나의 2005년은 나에게 정말 특별한 해였다. 많은 것을 보았고, 느꼈고, 그리고 경험했다. 감사했고 수월했고 힘들었던 1년을 보낸 뒤에 조금 더 자라있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너무 값진 것들을 얻게 되어 지금도 티끌만한 후회조차 없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 내가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대해 물어온다면 내가 먼저 앞장서서 추천해주고 싶다. 


김종은 (교환학생 13기) Morganton Christian Acade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