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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윤(교환학생 11기) 학생의 유학이야기

작성자 KEF
작성일 18-01-16 14:38 | 조회 9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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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윤(교환학생 11기) 
Park Christian HS, Moorhead, MN 

어려서 처음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늘 꿈꿔왔었던 미국생활. 돌이켜보면 지난 1년은 절대 그 꿈처럼 마냥 즐겁고 쉽지만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 경솔하게 영어만큼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미국에 와서 미국인들과 대화를 하려니까 주눅이 들어 말을 하기가 어려웠던 적도 많았고 호스트가족과도 어색하고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 사이 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웠다. 전에는 한 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것들, 그리고 바로 내 자신에 대해 소중한 교훈들을 얻었다. 지난 1년은 단순히 "잊지 못할 한 해" 였다고만은 할 수 없을 만큼 내게는 뜻 깊고 소중하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미국의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재능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도 학교 안에 얼마든지 많았다. 학교에는 시즌 별로 가장 인기가 많은 농구와 미식축구, 여자배구팀을 시작으로 테니스팀, 하키팀, 수영팀, 야구팀, 소프트볼팀 등등등 정말 여러가지 스포츠팀이 있었고 대다수 학생들이 이 중 최소 한가지 스포츠에는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또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스포츠뿐 아니라 성악을 잘 하는 친구들을 위해서는 마드리갈팀이 있었고 상식에 강한 친구들은 knowledge bowl팀, 웅변이나 연설에 자신 있는 아이들은 스피치팀에서 활동하며 좋아하는 일에 마음껏 빠져들 수 있었다. 정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우리나라처럼 성적을 잘 받아 좋은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진짜 공부가 좋아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었다. 
이공계 기피현상 따위도 이 곳에는 없었다. 수학, 과학을 좋아하던 12학년 선배들 중 대다수는 오히려 자진해서 이공계를 선택했다. 미국 교육이 우리나라보다 무조건 낫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학생들이 다양한 재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환경이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드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모두 친절했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하지 않으면 누구와도 정말 친한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다. 친구들은 자주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영화나 음악, TV쇼에 대해 이야기했고 주말에 친구들 집의 파티에 놀러 가면 나는 몇 시간 동안 침묵을 고수하고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기 일쑤였다. 

나의 이러한 어려움은 10학년 2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에 들어오면서 달라졌다. 방학 내내 교회의 어린이 집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여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또 어린아이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내 또래 학생들보다 훨씬 대하기가 편하고 쉬운 어린아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나는 말하는 것에 자신감을 되찾았고 꼭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하지 않아도 적극적이고 밝게만 생활하면 이 곳 아이들과 똑같이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방학을 마치고 11학년에 들어와서는 학교의 여러 가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배구팀의 매니저로도 일하면서 친구들과 훨씬 더 친해질 수 있게 되었다. 길 줄로만 생각했던 2달 반의 여름방학은 자원봉사말고도 호스트가족과의 미주리주로의 여행, 캘리포니아의 친척들 방문 등으로 훌쩍 지나갔고 11학년의 한학기도 지난 학기보다 훨씬 빨리 지나갔다. 

추수감사절, 부활절, 크리스마스들의 공휴일은 늘 호스트가족들과 더 가까워지는 좋은 기회였다. 그 때가 되면 우리나라의 구정이나 추석처럼 늘 3~4시간 정도 떨어져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댁을 찾아 뵈었고, 모든 친척분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모두 나를 진짜 가족처럼 너무 친절히 대해주셨다. 그럴 때 마다 한국에 있는 우리 가족들, 친척들이 생각났고,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잘해야지 속으로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 외에도 생각하면 소중한 추억들이 너무나 많다. 너무 좋으신 호스트 가족 아줌마, 아저씨는 바쁘신 와중에도 틈이 나는 대로 미네소타의 여러 가지 명소들을 구경시켜주셨고 미국문화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게 도와주셨다. 한국에서 입양된 호스트시스터 베사니와는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 있으면서 때로는 가끔 다툰 적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 오히려 서로의 문화, 사고방식, 또 사교생활에서 알아야 할 에티켓에 대해 많이 배웠다. 책임감이 커져 매일 저녁 식사 후 설거지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즐겁게 도맡아 했고 한국에서는 자주 늦잠 자고 지각하던 내가 미국에 온 후 1년 동안 단 한번도 늦잠 자서 지각하는 일이 없는 기적이 일어 났다. 
크리스찬 학교에 다니면서, 또 목사님이신 호스트가족 아저씨를 따라 성경공부 모임에 나가면서 신앙도 더 많이 자랐고 11월에는 세례도 받았다. 가을에 한국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많은 학교친구들, 교회가족들, 그리고 호스트가족 친척분들께서 카드도 보내주시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주변 사람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잘못된 정보나 인식을 전해주면 한된다는 생각에 한국에 대해서도 더 공부했다. 9월부터는 한 달에 한번씩 있는 미네소타의 나셀 오픈 도어 교환학생 모임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과 친해지면서 여러 나라와 그 문화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제 다시 한국의 고등학교로 돌아가면 예전처럼 공부 할 수 있을지, 한 살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적응은 잘 할지 아무 것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조금은 걱정도 된다. 그렇지만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체험하고 배운 것들은 한국의 다른 것들을 포기 했던 것 만큼 가치 있었다. 이제 일주일 뒤면 정들었던 호스트 가족과 친구들을 떠날 생각에 아쉽고 슬프기도 하지만 한국에 가면 더 성숙해져서 이 곳에서 얻은 교훈들을 가지고 무슨 일이든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돌아갈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