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후기

2010-2011 Grafton High School 윤혜정

작성자 KEF
작성일 18-01-16 14:49 | 조회 12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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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혼자서 비행기를 탄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년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마치고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가족과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내고 한국에서의 학교생활을 못한다는 점이 아쉬워 교환 학생으로 미국에 가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하고 다른 문화를 체험한다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아 다른 친구들과 같이 평범하게 가는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색다른 모험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저는 위스콘신에 위치한 Grafton이라는 도시에서 호스트 패밀리와 살게 되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일년 동안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떨리고 긴장 되기도 했습니다. 혹시나 나와 성격이나 생활 방식이 잘 맞지 않을 것에 대해서도 수 없이 비행기에서 걱정했지만, 걱정과는 반대로 좋은 호스트 가족을 만난 것이 지금까지도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배정 받은 호스트 패밀리는 평범한 미국인 가정이었고, 함께 살 호스트 언니도 있었습니다. 다른 교환학생들도 모두 호스트 패밀리에 배정을 받았겠지만, 제 경우에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함께 지낼 언니는 어렸을 때 중국에서 입양된, 몸이 조금 불편한 장애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뜻밖이었고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이 경험은 제게 신선한 충격이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더 깊이 생각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기에 에스터 언니는 한국에 와서 그 누구보다 가장 그리운 사람입니다. 
에스터 언니뿐만 아니라 호스트 부모님과 성인이 되어서 분가한 세 명의 언니들도 저를 정말 가족처럼 맞아 주고 대해 주셨습니다. 저는 남동생이 한 명 이어서 항상 언니가 있었으면 했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아셨는지 미국 가정에서는 저에게 또 다른 네 명의 언니들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언니들과 학교, 연애, 인생, 그리고 인기 드라마에 대해 수다를 떨고 조언을 들을 때면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호스트 부모님도 자상하시고, 저를 친딸처럼 대해주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추수감사절에 엄청나게 많이 터키를 먹은 기억, 크리스마스 파티 때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서 서로 선물을 교환한 기억, 그리고 첫째 언니가 남자 아이를 임신하게 되어서 서로가 생각해낸 이름이 남자 아이의 이름이 될 것이라고 아옹다옹한 기억...... 교환 학생 경험에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호스트 패밀리를 만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가족으로서의 인연을 맺고 함께 생활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얻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Grafton High School에 12학년으로 배정 받았습니다. 원래 나이 대로라면 10학년으로 배정 받았겠지만, 학교 측에서는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교환 학생들을 고학년으로 배정해 주었습니다. 처음 학교에 가서 들을 과목을 정하는데, 어찌나 마음이 설레던지요. 한국에서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시간표가 있다면, 미국 학교에서는 과목의 선택 폭도 넓고, 개인의 시간표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저의 첫 번째 학기 시간표는 Biology, U.S. History, Child Development, World Literature, Concert Choir, Photography, 그리고 Advanced Algebra가 차지 하고 있었습니다. 12학년을 배정받았지만 수업은 10학년 들이 듣는 과목이었습니다. 평소에 한국에서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던 터라, 학교 수업이 많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성실히 해간다면 선생님들께서도 예쁘게 봐주시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시려는 열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학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학교 공부가 수월해서 두 번째 학기 시간표를 짤 때 같거나 비슷한 과목을 선택하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교환 학생의 기회는 한번밖에 없고, 미국에서 내 자신을 시험해보고 더 많이 성장 시키기 위해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 학기 시간표는 AP Microeconomics, AP Psychology, U.S. History, AP English Literature, Concert Choir, Trigonometry, 그리고 AP Biology로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처음에는 담당 과목 선생님들, 담당 카운슬러 선생님, 심지어 호스트 패밀리까지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심지어 말리기까지 했습니다. 미국의 AP수업들은 미국 대학 입학을 위해 보는 시험을 준비하는 수업으로, 미국의 고학년 학생들에게도 어려워 일년 시간표에 주로 2개나 3개의 수업을 배치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환 학생인 제가 4개를, 그것도 일년 과정의 수업을 두 번째 학기 때부터 듣겠다니, 어쩌면 선생님들과 친구들, 그리고 호스트 패밀리의 걱정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도전 정신으로 두 번째 학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 생활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첫 번째 학기 때보다 눈에 띄게 증가한 숙제의 양과 빈번한 시험들, 역시 AP수업 이름대로, 대학교 수준의 내용을 공부하니 수업내용 자체도 좀더 공을 들여 공부해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열심히 한 결과 첫 번째 학기 때와 같이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의외의 결과에 선생님들께서 놀라시고, 많이 칭찬해 주셨습니다. 저 스스로도 어려운 과정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더 수준 있는 수업을 들으며 얻는 지식과 깊은 생각이 정말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느껴지니, 지금 다시 생각을 해보아도 그 때의 선택은 무모한 선택이 아니라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미국에서의 학교 생활을 떠올리면 역시 동아리, 그리고 다양한 이벤트를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참여 하면서 경험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사람과 빨리 친밀해지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습니다. Student Council, Amnesty International, Forensics, DECA, Concert Choir, Musical make up crew 등에 참여하면서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Student Council에서는 Service Chair을 맡으며 다양한 봉사활동을 주도해서 알아보고, 멤버들과 함께 봉사 활동을 하러 다녔습니다. DECA(경제 마케팅 동아리)에서는 선생님과 많이 연습한 덕분에 Retail Marketing 부문에서 메달을 땄고, Forensics(언변 동아리)에서는 수많은 연습시간과 지역 대회 참가 덕분에 Forensics State Competition에서 금메달을 따고, 영어로 말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Amnesty International (인권 단체) 동아리에 참여하며 매주 억울하게 인권을 유린/박탈 당한 사람들을 위해 호소하는 편지를 쓰고, 제3세계의 환경 개선을 위해 여러 번 기부운동을 동아리 멤버들과 펼치기도 했습니다. 제가 노래를 좋아하는 덕분에 Concert Choir은 제 시간표에서 1년 내내 빠지지 않았습니다. 90명의 학생을 포함한 어마어마한 반이었지만, 함께 노래를 부르고, Choir Competition등에 참여하며 친구들과 친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학교 뮤지컬에서 분장을 담딩하며 친구들과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제 자신이 얼마나 뮤지컬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기 초에 내가 과연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한국에 대해 궁금증이 많은 외국인 친구들과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진정으로 친해진 친구들이 많아졌습니다. Homecoming Dance, 그리고 Prom에 다녀오며 예쁜 드레스를 입어보고, 좋은 리무진을 타보고, 친구들과 밤새 신나게 춤을 추는 것도 당연히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이겠죠. 돌이켜 보면 이런 즐거운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시간이 금방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만약 후배가 저에게 교환학생으로 떠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조언을 구하러 온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꼭 다녀오라고 말을 할 것 같습니다. 교환 학생으로 지낸 다는 것은 타국의 언어, 문화와 사고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위스콘신에 지내면서 제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용기 있게 발표 할 수 있고, <1984>을 원문으로 읽으며 감동을 받고, 한국에서는 미워했던 남동생이 보고 싶어지고, 귀찮던 봉사활동이 정말 진심으로 즐겁고 보람 있게 느껴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꿈과 목표가 생겨나고, 다른 사람들과도 이런 나의 모습을 표현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저는 제 자신 스스로가 크게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것을 배우고, 나 자신을 더 이해하고 발견해 나가는 즐거움이 교환 학생의 참가의미라 여겨집니다.